
델포이 신전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너 자신을 알라(γνῶθι σεαυτόν)." 그런데 2,5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문구를 살짝 비틀어야 할 것 같습니다. "AI/알고리즘이 너를 어떻게 아는지 알라"로 말이죠.
우리가 '결정'이라는 인간 고유의 영역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심지어 기꺼이 외주화하고 있습니다. 고대 왕들이 국운을 걸고 평생 몇 번 신탁을 구했다면, 우리는 "점심 뭐 먹지?"부터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될까?"까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디지털 신탁에 의존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편리한 외주화의 대가로 우리가 진짜 잃고 있는 건 뭘까요? 그리고 모두가 AI의 추천을 따르는 시대에, 어떻게 해야 '추천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 보려 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Chapter 1. 어리석음은 반복되고, 이름만 바뀝니다.

장작더미 위의 크로이소스
그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해 키로스 2세에게서 장작더미 위의 화형을 선고받았다.
화가 Myson이 BC 500~490년 간 그린 작품으로 추정, 높이 59.5 cm,
루브르 박물관 소장, 사진 Bibi Saint-Pol
역사라는 낡은 책을 펼쳐보면, 먼지 쌓인 페이지마다 기시감이 드는 장면이 있습니다. 기원전 6세기,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는 페르시아 정벌이라는 중차대한 비즈니스를 앞두고 델포이 신전에 거액의 컨설팅을 의뢰했죠. 신탁의 답변은 외부 컨설팅 보고서처럼 대표가 원하는 답을 쏙 해줬습니다. "전쟁을 시작하면, 거대한 제국이 무너질 것이다." 왕은 흡족했습니다. 당연히 무너질 제국이 페르시아일 거라 믿었겠죠.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입니다. 제국은 파산했습니다. 신탁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계약서의 작은 글씨처럼, 해석의 위험을 고객에게 떠넘겼을 뿐입니다.

2,50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요? 산꼭대기 신전 대신, 우리는 'GPT-5'라는 새로운 신전의 API 대기열에 서 있답니다. 본질은 같습니다. 다만 스케일과 빈도가 달라졌을 뿐이죠. 고대인은 국운을 걸고 평생 몇 번 신탁을 구했지만, 우리는 “점심 뭐 먹지?” 같은 사소한 질문부터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될까요?”라는 삶의 중대사를 결정 짓는 질문 등,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 실리콘 덩어리의 신탁에게 우리의 생각을 자발적으로 외주를 맡깁니다. 심지어 “상사가 나한테 막말을 하는데?? 내가 욕을 쓸테니깐, 이메일 초안 좀.” 같은 가장 인간적인 감정 노동까지 내어주고 있습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크고 작은 결정권들을 자발적으로 점점 아웃소싱하고 있다는 것이죠.
물론 이 패턴은 새롭지 않습니다. 로마인은 닭 모이 쪼는 모습에서 M&A 타이밍을 점쳤고, 중세의 군주는 성경을 펼쳐 신의 뜻이라는 이름의 랜덤 변수로 영토 전쟁을 결정했습니다. 조선의 선비는 주역의 괘에 길흉을 물었고, 20세기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더들은 점성술 차트로 투자 타이밍을 결정했죠.(진짜입니다. 윌리엄. D. Gann을 찾아보세요.) 방식은 달라도 본질은 하나입니다.
결정의 무게를 외부 시스템에 전가하고, 실패의 책임으로부터 멀어지려는 너무나 인간적인, 아니, 너무나 주주친화적인 본능인 겁니다.
하지만 AI 신탁은 과거의 선배들과는 격이 다릅니다. 과거의 신탁은 '동쪽으로 가라'는 식의 모호한 가이던스를 제공했습니다. 그 모호함 덕분에 인간의 해석, 즉 '자유의지'라는 이름의 책임 회피 공간이 존재했죠. 실패해도 "내가 잘못 해석했다"고 자책할 수 있었고, 성공하면 "내가 신의 뜻을 꿰뚫었다"고 자찬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AI의 답은 "귀하의 과거 구매 패턴 및 소셜 데이터 분석 결과, A 제품 선택 시 만족도는 87.3%로 예상됩니다. B 제품은 가성비가 12% 높지만, 귀하의 무의식적 과시욕을 충족시키지 못할 확률이 92%입니다."와 같이, 숫자로 위장한 폭력에 가깝습니다. 이 정량화된 확실성 앞에서 우리의 직관이라는 연약한 내러티브는 힘을 잃습니다.
더 무서운 건, 이런 정량화가 우리의 사고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감정과 직관을 불신하기 시작했고,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 여기게 됐습니다. 최근 미국 팟캐스트에서 실리콘밸리의 수백억을 굴리는 VC는"중요한 투자 결정을 앞두고 ChatGPT, Claude, Perplexity에 각각 물어봅니다. 세 개가 일치하면 그대로 진행하고, 의견이 갈리면 더 고민하죠. 솔직히 말하면, 제 직감보다 AI의 분석을 더 신뢰합니다." 연봉 수천만 달러를 받는 투자 전문가가 AI 삼신할미께 결정을 맡기는 시대. 이게 진보일까요, 퇴보일까요?
그래서 이 글이 어디로 가냐고요? 재미있게 따라와주세요.
Chapter 2.
망설임의 경제학: 결정권을 구독하시겠습니까?
저는 이 모든 현상은 하나의 거대한 시장, 바로 ‘결정 대행 경제(Decision Delegation Economy)’의 부상으로 귀결된다고 봅니다. 우리는 이미 유튜브의 자동 재생, 쿠팡의 정기 배송, 스포티파이의 AI DJ에게 일상의 소소한 결정 주권을 넘기고 있습니다. 그 대가로 기꺼이 월 배독료를 지불하고 있죠. 인간은 선택의 자유를 갈망하지만, 정작 선택의 고통을 회피하고 싶어합니다. 매우 모순적이며, 재미있는 존재인것 같습니다. 아무튼, AI 서비스들은 바로 이 모순의 균열을 파고들어 "언제든 해지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저희가 대신 골라 드리죠."라는 악마의 속삭임으로 우리의 결정권을 야금야금 사들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맞춰서, 업계는 비즈니스 모델들이 진화되고 있습니다. 과거 기업들이 유형의 제품이나 무형의 서비스를 묶어서 팔았다면, 이제는 '결정' 그 자체를 번들링하여 판매합니다. 당신의 건강, 자산, 커리어, 연애까지. 월 99달러에 최적화된 인생 경로를 설계해 드립니다.😉" 와 같은 '인생 구독(Life as a Service)' 모델이 농담처럼 들리시나요? 하지만, 생각 해보세요. 의사 결정의 마찰비용까지 줄여준다는 것은 너무 매력적인 가치제안이라고 봅니다. 이 편리함의 대가로 우리가 지불하는 것은 단지 월 구독료뿐일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우리는 '예상치 못한 우연'과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실수'라는 가장 소중한 자산을 기회비용으로 지불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하게 최적화된 지점에서, 시장은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희소자원을 발견해냅니다. 바로 '인간적 변덕'의 가치입니다. 모두가 알고리즘과 AI의 추천 경로를 따를 때, 그 경로를 의도적으로 이탈하여 비효율적인 선택을 하는 행위, 즉 '의도된 삽질'이 새로운 형태의 사치(luxury)이자 자기표현이 되는 것이죠. 마치 모두가 공장에서 찍어낸 옷을 입을 때 맞춤 양복이 더 높은 가치를 갖는 것과 같습니다.
Chapter 3.
추천받지 못한 자, 존재하지 않으리

AI나 검색창에 내가 존재한다고 난리를 쳐야합니다.
“검색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라는 21세기 초반을 풍미했던 이 명제는 박물관을 가야할 시기가 다가온 것 같습니다. AI의 시대의 1계명은 더 무자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AI에게 추천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 명제가 SEO(검색엔진 최적화)라는 구시대의 유물이 퇴장하고 GEO(생성 엔진 최적화)라는 새로운 권력이 등극했음을 알리는 서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SEO가 '무언가를 찾는' 능동적 소비자에게 잘 보이기 위한, 어찌 보면 정직했던 싸움이었다면, GEO는 '무엇을 원해야 할지조차 묻는' 수동적 소비자에게 AI가 당신을 정답으로 속삭이게 만드는, 훨씬 더 교활한 영향력의 게임입니다.
AI는 더 이상 중립적인(??) 구글과 같은(???) 정보 검색 도구가 아닙니다. 개개인의 소셜 미디어 활동, 구매 이력, 심지어는 심박수 데이터까지 엮어서 "고객님의 현재 스트레스 지수와 미세먼지 농도를 고려할 때, 이 식당의 비건 메뉴가 고객님의 행복 총량을 7.8% 증가시킬 것으로 예상됩니다~~"라고 설득하는, 아니 설득할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아는 유능한 영업사원이자 집사가 될 예정입니다.

100만원짜리 컨퍼런스도 생기고 있습니다.
Generative Engine Optimization (GEO) Conference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마케팅 전략을 넘어 정치경제학의 영역으로 들어선다고 봅니다. "좋은 리더의 조건은?" 혹은 "지속가능한 자본주의란?"과 같은 질문에 AI는 누구의 목소리를 인용하여 답을 생성할까요? 당연히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해 'AI 친화적인' 양질의 데이터를 대량 생산하고 웹에 살포한 쪽의 논리가 정답으로 채택될 확률이 높습니다.
20세기에는 방송 주파수를, 21세기 초반에는 검색 알고리즘을, 지금은 SNS 알고리즘을 장악하는 자가 여론을 지배했다면, 이제는 LLM의 학습 데이터를 선점하는 자가 현실 그 자체를 정의하는 설계자가 됩니다. (뱀발이지만, 그런의미로 국가적으로 이미지 쇄신 정책을 하고자 한다면, 대대적으로 한국 관련 정보들을 SNS와 GEO 작업한 글들을 배포해야한다고 봅니다.) 기업들이 인간이 아닌 AI의 환심을 사기 위해 블로그 글을 쓰고 보고서를 발간하기 시작한다고 봅니다.
물론 흥미로운 역설이 있습니다. AI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저 학습한 데이터라는 거울을 통해 세상을 비출 뿐입니다. 문제는 그 거울 자체가 이미 '디지털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죠. '최고의 커피'를 물으면 AI가 동네 골목의 장인이 내린 커피가 아닌 거대 프랜차이즈를 추천하는 이유는, 후자가 온라인 공간에 압도적으로 많은 '디지털 배기가스'를 배출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디지털 가시성’이라는 것은 검색 알고리즘을 공략해야하는 것에서, AI로 옮겨갔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 게임의 규칙에 순응해 모두가 GEO에 목숨을 거는 것이 유일한 생존 전략일까요?
어떻게 개개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GEO 시대의 진정한 승자는 AI에 최적화된 자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AI가 찾아낼 수밖에 없을 만큼 독보적인 진정성(JJS)을 축적한 자일지도 모릅니다. AI도 결국 인간의 욕망을 학습하고, 인간은 최적화의 끝에서 언제나 '진짜'를 갈망하는 존재이니까요.
Chapter 4.
나를 증명하는 법: AI라는 새로운 신(神)을 위하여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관한 모든 것, 총정리!
키워드 아이덴티티는 AI와 SNS시대의 로고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질문 하나가 생각납니다. “이 거대한 추천 알고리즘 엔진과 결정 대행 경제의 시대에, 우리 개인은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하는가?”죠. 웃프게도 그 해답은 '퍼스널 브랜딩'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키워드 아이덴티티'의 구축입니다.
인공지능이나, 검색 엔진 알고리즘이나, SNS 알고리즘이나 동일합니다. 이 권력들이 나를 어떤 키워드들의 조합으로 인식하고 분류하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이런 복잡하고 비인격적인 시스템을 설득하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단순하고 인간적인 덕목으로 귀결됩니다. 바로 '꾸준함'과 '깊이'입니다. 유행을 좇아 주제를 바꾸는 대신, 자신만의 영역을 묵묵히 파고드는 것. AI를 속이려 애쓰는 대신, 정말로 그 분야의 '진짜'가 되어버리는 것 외에는 다른 왕도가 없습니다.
이 말은 즉, ‘제너럴리스트의 장례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어느정도 깊이를 가진 제너럴리스트라면 다시 부활하겠지만, 대다수는 장례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 분야에 대해 70점짜리 답을 내놓는 인간은, 모든 분야에 90점짜리 답을 내놓는 ChatGPT의 느리고 비싼 버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AI 시대의 생존자는 역설적으로 가장 좁고 깊게 파고든 전문가, 즉 '덕후'들입니다.
"한국 전통 누룩을 활용한 내추럴 와인 양조 전문가(제가 적고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되었습니다.)"는 AI가 쉽게 대체할 수 없습니다. 데이터가 희소하고, 경험적이며, 문화적 맥락이 풍부하기 때문이죠. 즉, 시장의 '머리' 부분은 AI가 장악하겠지만, 무수히 많은 니치 마켓이라는 '긴 꼬리'의 영역은 인간 전문가들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AI 시대의 개인 전략은 하나의 명제로 수렴합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성이, 자동화가 가속화될수록 진정성이란 희소자원의 경제적 가치는 폭등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습니다.
진정성JJS은 해킹할 수 없다 (Authenticity cannot be hacked).
우리가 AI에게 수많은 결정을 위임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만큼은 우리 자신이 직접, 온몸으로 써내려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답을 쓰는 꾸준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야말로 AI도, 다른 그 누구도 복제할 수 없는 나만의 경제적 해자(moat)이자, 대체 불가능한 브랜드의 본질이 되는 것이죠.
이런 세상에서 나만의 키워드를 혼자 찾는 것이 힘드시다고요?
그렇다면, 르코와 렉스의 도움을 받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1:1 컨설팅과 콘텐츠 생산을 통해 나만의 자산을 만들어보실 수 있답니다.









